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말.

Posted 2010. 9. 30. 00:08 by RoseMariJuana
  가사가 있는 곡을 듣고 있어도 나는 정작 가사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의 목소리도 하나의 소리 그 자체로 듣는 경우가 많다. 음색이 어떤지, 다른 소리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그래서 전체적으로 어떤 분위기를 내는지 등이 내겐 더 중요하다. 또 한 곡을 여러번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합쳐진 소리들을 하나하나 다시 분리하고 있다. 그래서 드럼소리만 듣는다던지, 피아노 소리만 듣는다던지, 바이올린 소리만 듣는다던지, 어떤 특정한 악기 소리 하나만 집중해서 듣기도 한다. 나는 절대음감은 아닌데(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소리에는 정말 민감한 편이다.
  그리고 나는, 아 이것을 뭐라고 해야되나, 연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음악을 듣다보면 가끔 색이 보인다. 분명 귀로 듣고 있는데 순간 영화를 보고 있거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심하면 그 감정에 몰입되어 버리기도 한다. 음악을 듣고 떠올리는 어떤 상황이 황량하거나 비극적이거나 위태로우면 온몸이 자동적으로 아리다. 몸이 아릴경우는 딱 한가지 뿐이다. 내가 어떤 상황을 감정적으로 견디지 못할 때 그게 결국 신체적으로 탈이 나는 경우다. 이런 것들은 내가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야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언어가 표현의 도구로써 그나마 가장 친숙한데, 반면에 그 중에 또 가장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룰 안에서 기호를 내 마음대로 블럭 쌓듯이 조합할 수는 있지만, 조합을 끝내는 순간 그것은 원래의 그것이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다른 영역에선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이 정말 좋은 작품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엔 사진은 참 순수하지 못한 표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처럼 점 하나 선 하나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면 그건 참 어렵지만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글이건 그림이건 사진이건간에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 대단한 일을 이루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진다. 장르에 대한 제한이나 구속같은건 나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두려움 같은 것도 없다.
  어렸을때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음악 교과서에 나온 어떤 곡(제목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을 작곡하신 분께서 직접 우리반 일일 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하셨는데, 그날 수업의 주제는 바로 표현의 방법이었다. 가사를 읽고 마음대로 악상을 바꾸는 수업이었는데, 내 악보를 보시고는 발표를 시키셨다.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며 내가 바꾼 악상들을 발표했는데, 작곡가 선생님 뿐만 아니라 참관 오신 다른 선생님들과 친구들까지 전부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나는 작곡가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어려운것이 아니다. 제한도 없고 절대적으로 고정된 무언가도 아니다. 사진 한 장을 찍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온 감각을 다 사용한다고 말하면 이해할 수 있나? 나는 그렇다. 대신 정말 끊임없이 내 안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관찰한다. 뒤죽박죽인 그것들을 다시 재배치 하고 가끔은 특정 부분을 잘라내어야 할 때가 어렵긴 하지만. (같은 선상에서 평소에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데, 가끔 작정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써야 할 때, 문단 나누기나 글의 구성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할 때 꽤 머리가 아프다. 이런 글은 오래걸리지만 한 번 완성하면 더 이상 손대지 않는다.)
  모든것은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각각 다른 특성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특성을 부각시킬 것이가 아니면 모두를 잘 조화롭게 만들것인가, 그것들을 잘 조율해서 결과적으로 큰 임펙트를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능력이고 또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 안에서도 존중이라는 것은 필요하다. 무조건 나보다 열등하다고 무시하거나 혹은 쉽게 생각하여 누군가가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을 따라하는 것. 나는 그런게 싫다. 영향은 받을 수 있지만 표절은 범죄다.
  그래서 또 나는 좋아하는 작품은 있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 걸작을 만났을 때 '와 정말 대단해'란 생각은 해도 '나도 다음에 이렇게 만들어 봐야지'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만의 색을 갖기 위해서 아득바득 덤비지 않아도 내 신념대로 묵묵히 해 나가다 보면 나만의 색은 자연스레 짙어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