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The Birds, 1963) - 알프레드 히치콕

Posted 2010. 4. 19. 00:51 by RoseMariJuana

 


  나, 히치콕의 팬이 되기로 했다. 이전부터 언젠가는 꼭 히치콕의 영화도 한번 봐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 EBS에서 '새'를 해주길래 설마 '히치콕?' 하며 보게 되었다. (매번 말하지만, EBS 최고!) 아, 이래서 다들 히치콕, 히치콕 하는구나 싶었다.
  정말이지 이런게 제대로 된 공포가 아닌가 싶다. 화려한 CG와 배경음악으로 긴장감을 준다든지,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해 억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든지 하는 요즘 영화와는 달리 이야기만으로 관객을 상상하게 만들고,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만들어 공포를 느끼게 한다. 거기다 그 공포를 만드는 소재가 다름 아닌 '새'라는 것. 익숙하고 친근한 것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 갑자기 나를 위협한다고 생각해 보라. '새'가 무엇을 상징하든지 간에(나는 그런거 잘 모른다. 전문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흥미로운 소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한가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새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무서운 이야기만을 하려고 했을까. 물론 새가 어떤 '무엇'을 상징한다고 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만(인간과 새의 입장이 뒤바뀐 장면을 생각해 볼때), 나는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의 흐름이다. 특히 미치의 어머니의 심리상태 말이다. 어쩌면 '새'는 단지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장치에 불과할지도 모르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상황에서 변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식으로, 즉 스릴러라는 장르로 그것을 풀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끝으로, 인상 깊었던 마지막 장면. 'The End' 자막도 없이 영화가 끝나는데, 속 시원히 원인도 안 밝히고 뒷 이야기도 말해주지 않고 끝나버리는데, 왜일까 나는 이 장면이 그냥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영화를 보는 내내 알렉산더 맥퀸이 떠올랐다. 소재가 '새'여서 그랬을까, 그로테스크한 맥퀸의 옷이 눈 앞에 아른 거렸다. 아, 맥퀸.